절망 독서
국내도서
저자 : 가시라기 히로키 / 이지수역
출판 : 다산초당 2017.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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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에서 대여 E북을 50% 할인해주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미 7권이나 골랐지만 3만원을 채워야지만 추가 30%할인을 받을 수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마지막으로 장바구니에 집어 넣은 이 책.  
’절망독서’.
안샀으면 어쩔 뻔했을까? 정말 너무 좋았다. 작가의 문체는 너무나 따뜻하고 사려 깊어서 읽는 내내 맘이 불편한 지점이 1도 없었다.

절망을 이겨내기 위한 책이 요새 많이 나온다. 
옛날에는 본인이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반면에 요새는 본인들이 모두 아픈사람이란 걸 인정하는 것 같다. 아픈사람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존감 책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아픈 상태를 어떻게 보낼것인지에 대한 책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좋았다.

작가는 대학교 3학년 때, 불치병에 걸리게 된다. 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며 절망을 느낀다. 아, 나는 이제 더 이상 산을 오를 수도, 남들이 다 하는 취업을 할 수도 없구나. 그리고 그 절망의 기간에 절망적인 책들을 통해, 아니 절망적인 ‘이야기’들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예를 들어 어느날 벌레가 되어버린 ‘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리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내는 등 말이다. 책은 크게 2부로 나누어져있다. 1부에서는 절망의 시기에 왜 절망적인 이야기를 탐독해야하는지, 2부에서는 자신이 읽고 좋았었던 절망적인 이야기(책, 드라마, 영화)등을 추천해준다.

작가가 말하는 절망독서의 필요성은 내가 소설 책이나, 에세이를 읽는 이유와 동일했다. 그래서 나는 더 이 책이 좋았다.사람은 공감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공감을 받지 못하면 외로워진다. 때로는 공감을 해주려는 사람들이 고맙지만 오히려 더 외로워질 때가있다.주변에 공감을 바라고 이야기를 시작했을때, 내가 기대했던 공감을 받지 못하거나 나의 고민이 가볍게 여겨지는 것에 나는 때때로 상처를 받곤했다. (물론, 고맙지만 그냥 상처를 받는다는 뜻이다. 나도 아마 그런식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또, 그럴 땐 내 자신이 나를 완전히 공감해 주면 좋을텐데 나도 내 맘이나 생각에 공감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때, 책에서 다가오는 문장들, ‘그래! 내 맘이 이거야!’,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을 해본적 있어’ 라고 마음 속으로 외칠 수 있는 구절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주인공들이 어찌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는지. 왜 눈물이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먹먹하고 슬펐는지.

변변찮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말이 오히려 슬프거나 답답할 때가 있다. 그 이유는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나의 고독이나 슬픔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으며, 모든 개인의 고독이나 슬픔은 오롯이 모든 개인의 몫이기 때문일 것이다.

슬픔이나 절망은 불가피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크게 슬플 이유 하나 없이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유가 없는데도 나는 계속 슬프고 눈물이 나서 더 서럽고 슬펐다. 이렇게 행복하고 어쩌면 감사해야할 수 있는 조건에도 이렇게 슬프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도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차라리 슬픈 이유가 있었다면 그 이유를 탓하면서, 그 이유만 아니라면 나는 행복할텐데! 라고 외칠 수 있었을 텐데 변명할 말이 없다.
그래서 '절망의 시기를 보내는 법을 알아두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에 큰 공감이 갔다.

절망을 가르쳐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엄마 아빠는 절망을 경험할 수 없도록 나를 키우셨다. 물론 아예 없을 순 없지만 아주 최소한의 절망만큼을 경험하게 끔. 그래서 재정적 어려움이나, 힘듦을 오빠나 나에게 일체 말하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부모님께서 겪으시는 절망의 크기가 컸었기 때문일까? '절망은 아주 힘든 것이니, 그러니 너희는 절망으로 빠지지 않도록 안전하고 튼튼한 다리만 건너도록 해라.' 와 같은

하지만 절망은 불가피했고 오히려 나는 겁쟁이가 되었던 것 같다. 나무 다리를 건너는 것을 절망으로 생각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던 것 같다. 건너지 않는 것이 더 겁쟁이라는 것도 모르고. 대학만 가면 행복할듯이 말했던 어른들의 말은..

절망감. 절망을 느끼더라도 받아들이고 바닥을 치면 다시 올라 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절망의 기간을 보내렴. 절망을 통해 배운 것으로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렴. 이 세상에는 정말 많은 절망적인 상황이 있단다. 절망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절망스러운 때가 있을 것이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너 조차도 알 수없는 이유없는 아픔과 슬픔과 고독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절망감을 회피하지 말렴. 파도를 피할 수 없듯이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나렴. 다시 일어나도 또 절망은 다가오겠지만 그것은 모두가 겪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좋았던 문구들

미술 전시회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면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라며 야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 아는지 모르는지를 따지는 사고방식 자체도 문제겠지만, 어쨌거나 그 시점에는 그림이나 조각을 보고 전혀 감동이 없고 무미건조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언젠가 과거에 본 그 작품이 머릿속에 떠오를 순간이 올테니까요. 그리고 그 작품을 다시 보고 싶어질테니까요. 그때에는 감동으로 마음이 떨릴지도 모릅니다. 그 떨림이 자신을 지탱해줄지도 모릅니다.

책을 사서 읽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면 헛되고 아깝다는 말을 듣기 쉽지만, 아직 읽지 않은 책이란 우리 몸으로 치자면 여분의 힘입니다. 그 힘이 없으면 여차할 때 곤란해집니다. 절망에 빠지게 된 순간, 그중 어느 책의 제목이 갑자기 눈에 들어올지 모릅니다. 사람은 쓰러지는 순간 집어든 책에 구원받기도 합니다.

투병기도 종종 받았습니다. 이 또한 보내는 사람의 마음은 잘 이해되었으며, 저도 흥미를 느끼기도 했지만 읽기에는 괴로운 면이 있었습니다. 병이라는 것은, 설령 같은 병이라도 증세가 상당히 다릅니다. 자신보다 가벼우면 참고가 안된다고 느끼고, 자신보다 무거우면 그것대로 침울해집니다. 투병기의 주인공은 대게 ‘병에 걸려도 밝고 긍정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보내는 쪽은 ‘그런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 격려가 되겠지’라고 생각한 것이며, 확실히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투병기를 받으면 부모님께 위인전을 받으며 ‘이런 사람을 본받아서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라는 말을 듣는 초등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평범한 인간은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병과 싸우는 것만해도 힘든데, 그에 더해 훌륭한 사람까지 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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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국내도서
저자 :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 이재황역
출판 : 문학동네 200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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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프란츠 카프카

카프카의 변신이 국어 교과서 어디에 실렸었더라? 중학교? 고등학교?

실린 곳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읽었을 때 충격을 받았었던 것은 기억이 난다. 

슬펐다. 왜 벌레가 되어서.. 그것도 아무런 이유 없이, 뭘 잘못하지도 않았는데도

최근 절망독서를 읽고, 카프카의 이야기를 추천해주는 작가때문에 재미있게 읽었던 생각이 나서 빌려보았다.

무력함이 느껴진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폐가 되는 존재,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들로부터의 경멸.

결말은 해피엔딩이기를 바랬다. 죽은 뒤에라도 그레고리가 사람으로 돌아와서 가족들이 눈물을 흘려주기를 바랬는데(그게 해피엔딩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그레고리가 죽은 것에 감사하며 그들의 삶을 살아낸다.

하루아침 사이 내가 벌레가 된다는 것이 예전에는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벌레가 된다는 것이 텍스트 자체의 벌레 뿐 아니라 징그럽고 해악함. 소통할 수 없음, 무력함 등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루아침 새 내가 벌레가 되어버린다면, 병에 걸린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돌이 되버린다면. 식물인간이 된다면.

내가 벌레가 된다면 우리가족은 날 사랑해줄까?
반대로 우리가족 중 누군가가 벌레가 된다면 나는 동일하게 대할 수 있을까?

슬프다.

왜 벌레가 되어버린걸까? 그 ‘왜’가 예전에는 궁금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세상에는 이유없이 벌레가 되어버리는 순간들이 많은 것 같기 때문이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
미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내가 말하는 것을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라는 것 처럼

벌레가 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나의 속은 그대로인데, 내가 벌레가 되어버린다면
일을 할 수도 없고 대화도 할 수도 없고 징그럽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거?
현실에서도 있을 법한 이야기같다.

카프가는 왜 이런 소설을 쓰게 된 걸까?
평범한 사람이었다던데. 머릿속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만약 그레고리가 벌레가 아니라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가 되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그레고리가 집을 떠나서 벌레들이랑이라도 어울릴 수 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공감은 너무나 중요한 것 같다. 같은 처지의 벌레들이랑 어울릴수라도 있다면
그 역시 괴로우려나? 하지만 외롭지 않을 수 있으니까 나라면.. 벌레들이랑 어울리려고 해보지 않았을까?

그레고리가 말이라도 할 수 있었더라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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