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국내도서
저자 : 은희경
출판 : 문학동네 201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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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맞아 보성에 있는 친할머니댁에 내려갔었다. 그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할머니 댁에 도착한 밤부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우리 집에 언제가?’ 

하루밤이 지나 아침이 되고 오후가 되었다.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잠을 자는 것 밖에 없었다. 자도자도 끝나지 않던 오후, 정희언니였던가 정님이 언니였을까?


"유진아, 이거라도 읽을래?" 해서 읽게되었던 책. 새의 선물.


그때도 지금도 책은 재미있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때 내 나이는 12살 진희에 더 가까운 나이었고 지금은 21살 진희의 이모에 더 가까운 나이라는 것.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내용들이 오히려 야하게 느껴지는 것.

책 속의 15살 미소년 현석오빠와 책의 주인공 12살 진희가 뽀뽀하는 장면에서 두근두근 설렜던 16살의 나. 나는 이제 어느새 책속에 나오는 진희의 이모보다 나이가 먹었다. 

아직 어린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 상상한 어른이 된 나의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은 큰 차이가 있다. 나는 25살이 되면 돈도 많이 벌 줄 알았고, 나만의 전문 분야가 있을 줄 알았고, 아는 것이 많아 질 줄 알았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질 줄 알았다. 근데 26.5세의 나는 그대로다.

공부를 해야하는 걸 알면서도 하기 싫어 공부빼고 모든 것이 재미있었던 고등학생 때와일을 해야하는 것을 알기에 일빼고 모든 것이 재미있는 회사원이 다를 것이 없다. 아직도 친구들을 만나면 장난을 치느라 건물 뒤로 숨고, 등 뒤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것이 아직도 재미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이미 그때 다 자란 것이 아니었나싶다. 

그래서 요새는 기대가 별로 없다. 어른이 되면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앞으로 시간이 지나도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구나 라는 생각에. 삶이 권태롭고 재미가 없어지는 순간들이 늘어나고, 그 순간들이 늘어나서 기간이 되어버린 것 같다. 

책 속의 진희는 12살인데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무엇을 잊어버리고 무엇을 알게되었을까



삶이란 장난기와 악의로 차 있다. 기쁨을 준 다음에는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 기쁨을 도로 뺏어갈지도 모르고 또 기쁨을 준 만큼의 슬픔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기쁨을 내색해도 안 된다. 그 기쁨에는 완전히 취하는 것도 삶의 악의를 자극하는 것이 된다. 허석과 만날일이 기쁘면 기쁠수록 내색을 하지 말자. 그리고 한편으로는 누구의 삶에서든 기쁨과 슬픔은 거의 같은 양으로 채워지는 것이므로 이처럼 기쁜 일이 있다는 것은 이만큼의 슬픈 일이 있다는 뜻임을 상기하자. 삶이란 언제나 양면적이다. 사랑을 받을 때의 기쁨이 그 사랑을 잃을 때의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듯이. 그러니 상처받지 않고 평정 속에서 살아가려면 언제나 이면을 보고자 하는 긴장을 잃어서는 안 된다. 편지를 가슴에 껴안고 즐거워 하거나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 내 모습을 악의로운 삶에게 들키면 안 된다.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이쁘고 좋기만 한 고운 정과 귀찮지만 허물없는 미운 정이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이 훨씬 더 너그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실한 사랑의 이유가 있는 고운 정은 그 이유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지만 서로 부대끼는 사이에 조건 없이 생기는 미운 정은 그보다는 훨씬 질긴 감정이다. 미운 정이 더해져 고운 정과 함께 감정의 양면을 모두 갖춰야만 완전해지는게 사랑이다.

할머니의 사랑 중에 고운 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나라면 이모는 물론 미운 정 쪽이다. 이모는 고운 정을 갖기는  틀렸기 때문에 할머니에게서 완전한 사랑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나 뿐이다. 그러나 나는 미운 정을 얻기 위해 할머니에게 함부로 군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자신이 없다. 어쩌면 미운 정이란 고운 정보다 훨씬 더 얻기 힘든 무르익은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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