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전시관이야 예전에 너하고 봤던 그 그림들이야 "카페에서, 르탕부랭의 아고스니타 세가토" 그 작품 생각나니? 반 고흐 애인으로 알려진 여자 초상화 말이야 근데 그 초상화 밑그림으로 다른 여자의 상반신이 그려져있네 "포도"에도 "노란 장미가 담긴 잔"에도 다른 못 그린 그림들이 숨겨져 있어 가난한 화가가 재활용한 캔버스의 밑그림이 훤하게 보이는 거야 이렇게 회화에 엑스레이를 쐐보면 덧칠하기 전에 그린 그림들이 보인단 말이지 그가 덮어버린 스케치 감췄다고 믿었던 수많은 물감칠 안간힘 쓴 흔적들이 고스란히 들통나는 거야
전시관 앞 기념품 가게 모퉁이에서 엽서에 몇 자 적어 보낸다 내가 죽거든 내 작품에 엑스레이나 전자현미경을 들이대지 마 낙서도 만화도 아닌 거 훔쳐본 누드 종이를 불에 그을려보지 마 덧칠한 시와 산문들 눈물이 마르지 않은 종이 위에 쓴 명랑한 노래 그지없이 한심한 필체나 지웠다가 쓰고 다시 덮어버린 잿빛 모래 위 갈매기 같은 글자를 보지 않길 바라 이걸 읽으며 넌 키득키득 웃어넘기겠지 한심한 네 작품을 누가 힘들여 분석하겠냐며 답장을 쓸지도 모르지
내가 죽거든 다시는 못 살아나게 지켜줘 내 얘길 하지도 마 일기든 메모든 수첩이든 불태워줘 약속해
김이듬 - 반불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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